사방이 새카만 방에 나 혼자 서 있었다. 어디가 벽인지, 천장인지 바닥인지 알수 없는 방이었다. 아무것도 알수 없었지만 분명 발이 바닥에 닿아있었고, 방 안에 있다는 공감간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꿈 속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선뜻 앞으로 발을 내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주변을 빙빙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고 있자니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전에도 이 방에 온적이 있는것 같은데, 분명 그때는 이렇게 새카맣지 않았다. 그때는 새하얀 방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방을 빙빙 둘러보다가 문득 내 앞에 거울 하나가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도대체 왜 지금에서야 저 거울을 발견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거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울과 나만 있는 이 방에서 괜시리 장난끼가 발동해, 거울을 보고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거울에 비치는 나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깜짝 놀라 벌어진 입을 겨우 닫았더니 거울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안녕"
하고, 녹음기에서나 듣던 내 목소리가 거울에서부터 들려왔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마음에 몸을 앞으로 내밀어 거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봐도 저건 내가 맞다. 나는 조심스레 나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된거야? 넌 누구고? 나 아니야?"
그러자 내가 미소지었다.
"맞아. 난 너야. 이렇게 보긴 처음이지?"
"여긴 도대체 어디야?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겠거든. 너... 아니 나, 이것 참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다. 하여튼 전부 다 이상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대면하긴 처음이지만, 어쩐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했다. 나 자신이니까 당연한걸까.
"여긴 그러니까... 진짜 내가 있는곳이야. 잘 설명하기가 힘든데. 그냥 그렇게 알아두면 될거야."
"도대체 머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런곳에 있는거지?"
그랬더니 내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턱을 괸채로 '음'하며 조그맣게 신음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지만, 왠지 있잖아."
"왠지?"
"왠지 널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날? 내가, 날 데려와야 한다구? 아 머리아파."
나는 멋쩍게 웃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 안될거라는거 알아. 나도 이런적은 처음이거든."
"어떻게 날 데려가면 되는데?"
내가 다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간단해"라고.
"그냥 여기까지 걸어오면 돼. 내가 있는곳까지."
"그런데 조금 무서운데. 아래로 쑥 빠질것만 같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기서 널 다치게 하는건 아무것도 없거든."
"그래도. 너무 멀어."
나와 나 사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져 가는것 같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스레 한걸음 내딛자, 갑자기 뒤에서 벽이 와장창 하고 깨지기 시작했다.
"으악! 이게 뭐야? 정말 괜찮은거야? 무너지고 있는것 같은데!"
"괜찮아. 걱정하지말고 날 믿어."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걱정스러운, 하지만 확신에 차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나니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응, 날 믿겠어."
그렇게 당당히 한걸음 한걸음 나를 향해 다가갔다. 물론 그렇게 나와 내가 가까워질수록 내 뒤편의 벽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앞으로 나아갈수록, 벽이 부서진 뒤편에서 새하얀 빛이 새어나옴을 느낄수 있었다.
뒤를 살작 돌아보니 깨어진 검은 벽 너머로 새하얀 벽이 드러나고 있었다. 눈부실정도로 새하얀 벽이. 그렇게 벽이 무너지고, 새로 나와도 역시 벽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긴 힘들었지만 분명히.
나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내가 먼저 뻗은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에게 손을 뻗은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마치 거울처럼 함께 손을 내밀었다.
내가 내 손을 덥석 쥐자, 온 방안이 새하얗게 바뀌었다. 눈을 뜰수 없을정도로 눈부셔서, 세상이 점점 하얗게 물들어갔다. 그 짧은 순간에 내 얼굴을 얼핏 볼수 있었는데
희미하지만 분명히. 나를 보며 활짝 미소짓고 있었다. 조용히, 부드럽게. 그 미소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것만 같았다.
"돌아와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여러번 멀어지겠지만, 그때마다 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게. 난 언제든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